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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부모와 아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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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 미니멀 2021. 12. 14.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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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이가 반듯한 인간, 곧 동정심이 있고, 헌신적이고, 남을 보살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인간다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자비로운 방법으로 키울 때에만 그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과정이 방법이라는 것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예절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 하여 아이들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인간다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

 

1. 규율 : 감정에는 너그럽지만 행동에는 엄격하게

 

2. 아이를 배려하면서도 부모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부모들은 열린 마음과 열린 가슴을 가져야 한다.

 -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 비난하지 말고 길잡이를 해주어야 한다.

 - 화가 날 때는 '나'라는 말로 시작하여 자기가 본것, 느낀 건 기대했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 아이들의 노력에 대해서 높이 평가한다는 점을 말해주기 위해서 칭찬을 할 때는 그 특별한 행동을 언급해야 한다. 인격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 현실에서는 허락할 수 없는 것을 상상 속에서는 허락하여 거절하더라도 마음을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선택권과 발언권을 주는 것이 좋다.

 

질문에 숨어있는 아이의 속마음

 

 아이들과의 대화는 마치 예술 같아서 그 의미하는 바와 법칙이 특이하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그저 천진난만하다고만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아이들의 말을 이해하려면 마치 암호를 해독할 때처럼 기술이 필요하다.

열 살 난 앤디는 아버지에게 "할렘 (뉴욕의 빈민촌)에는 고아들이 몇 명이나 있어요?"라고 물었다. 매우 지적인 약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어린 나이에 벌써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이 기뻐서 그에 관해서 길게 이야기를 한 뒤 자세한 통계 수치를 일러주었다. 그러나 앤디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같은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뉴욕에는 고아가 몇명이나 있나요?"

"미국에는?"

"유럽에는?"

"전세계에는?"

 아버지는 비로소 아들의 염려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며, 아들의 본래 걱정이 고아들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자기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들은 통계수치를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는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앤디의 걱정거리를 대신 이야기해 주며 이렇게 대답했다.

" 엄마 아빠가 어떤 부모들처럼 널 버릴까 봐 걱정하는구나. 내가 장담하는데 우린 절대 넌 버리지 않아 다시 그런 걱정이 들거든 내게 이야기해. 내가 널 안심시켜 줄 테니까."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유치원에 온 다섯 살 난 낸시가 큰소리로 말했다. 

"누가 그림을 이렇게 밉게 그렸어. 엄마!"

얼굴이 화끈거린 낸시의 어머니는 못마땅한 얼굴로 딸아이를 쳐다보면서 나무랐다.

"예쁜 그림들을 밉다고 말하면 안 돼!"

옆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이 아이가 한 말의 뜻을 이해하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 여리서는 그림을 꼭 예쁘게 그리지 않아도 괜찮아.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돼."

낸시는 그때서야 자기가 알고 싶었던 물음의 속뜻 즉 '그림을 잘 못 그리면 무슨 벌을 받을까?" 하는 것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고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낸시는 다시 깨진 장난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이걸 망가뜨렸어?"

어머니는 대답했다.

"누구라고 말하면 네가 알겠니?"

낸시는 그 아이 이름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낸시는 장난감을 망가뜨리면 어떤 벌을 받지는 가 궁금했던 것이다. 물음의 참뜻을 이해사 선생님은 다시 대답해 주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긴 하지만 어쩌다 깨지는 수도 있어."

그러자 낸시는 만족스러워했다.

낸시는 우회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법으로 자기가 궁금하게 여겼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아 어른들은 그림을 못 그리거나 장난감을 깨뜨려도 쉽게 화를 내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여기 와서 겁낼 필요가 없겠네.'

낸시는 유치원을 떠나는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재미있게 유치원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열두 살 난 외동딸 캐럴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촌언니가 여름방학 동안 자기 집에서 떠나게 되자 슬퍼서 어쩔 줄 모르며 눈물을 흘렸다.

 

캐럴 : (눈물을 글썽거리며) 언니가 가면, 난 또 외톨이가 될 거야.

어머니 : 다른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캐럴 : 외로워질 것 같아요.

어머니 : 곧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캐럴 : 아 엄마는 몰라.(훌쩍훌쩍 운다.)

어머니 : 열두 살이나 먹은 아이가 아직도 어린애처럼 훌쩍거리다니!

 

 캐럴은 절망적인 눈초리로 어머니를 흘겨보고는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어머니가 조금만 캐럴을 이해했더라면 이 대화는 얼마든지 즐겁게 끝맺을 수가 있었다. 사건 자체가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부모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머니가 보기에는 분명히 방학을 같이 보내고 나서 헤어지는 것이야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큰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안쓰러워하는 마음마저 아낄 필요는 없다. 

어머니는 '캐럴이 지금 섭섭해하고 있구나. 그런 마음을 달래주어야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캐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언니가 가버리면 퍽 섭섭할 거야."

"늘 같이 지내다가 헤어지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언니가 가버리면 네게는 집이 온통 텅 빈 것 같을 거야. 그렇지?"

 이렇게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반응하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한층 더 친밀해질 것이다. 부모가 자기감정을 이해해주고 있다고 느낄 때 아이의 외로움과 상처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아이는 이렇게 이해심 있는 어머니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깊은 동정심은 상처 받은 마을을 달래는 정서적인 치료제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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