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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2일부터 시작하는 인문고전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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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 미니멀 2021. 12. 2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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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는 아이가 생후 42일이 되자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네이스>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는 원문, 즉 라틴어로 읽어주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30대에 읽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만 읽었지 <아이네이스>를 읽어볼 생각은 안 했거든요. 저는 <아이네이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짝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교사가 되어 교육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유명한 인물들, 특히 유럽의 천재들은 모두 <아이네이스>를 읽었더군요. 그제야 저도 그 책이 상당히 의미 있는 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네이스>는 베르길리우스의 장편 서사시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11년에 걸쳐서 이 책을 썼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스에 여행 갔다가 열병에 걸렸던 것이지요. 죽기 전까지 작품을 손질했지만 미완성된 시행이 50곳 정도 되었습니다. 그는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이 작품을 불태워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 제정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따라 이 작품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총 12권인 <아이네이스>가 한 권 한 권 끝날 때마다 읽어달라고 청할 만큼 이 책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리길리우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거의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태우지 말고 출판을 하라고 하죠.

 당시 로마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공화정 말기에 절대 권력자 카이사르가 귀족들에게 암살당합니다. 이후 카이사르의 상속자인 옥타비아누스와 당대 실력자인 안토니우스가 대결을 하다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게 됩니다. 로마의 지배자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다시 로마를 평화롭게 만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귀한 자)'라는 명칭까지 받게 됩니다. 당시 귀족들은 아우구스투스에게 잘보이기 위해 시인들에게 막대한 돈을 주고 아우구스투스를 찬양하는 글을 쓰게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이네이스>였습니다. 절대 권력자를 찬양하는 이 책이 서양의 핵심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바로 그 안에 인문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7년간 지중해 세계를 방랑하다 로마를 건설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총 12권 가운데 앞의 여섯 권은 <오디세이아>의 방랑 스토리를, 뒤의 여섯 권은 <일리아스>의 전쟁 스토리를 본받았다고 합니다.

 여신 베누스와 인간인 안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가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망할 당시 트로이를 빠져나옵니다. 그는 트로이 유민들과 함께 여기저기 떠돌며 나라를 세우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러다 카르타고에 도착해 디도라는 여왕을 만나 사랑에 빠지죠. 하지만 아이네이아스는 신탁을 받은 자이기에 디도를 남겨두고 떠나게 됩니다. 아이네이아스는 쿠마이의 무녀 시빌레를 만나 함께 저승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 안키세스의 망령을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는 일족의 운명과 새로 건설될 나라에 관해 들려줍니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아이네이아스는 마침내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 지방에 도착해 투르누스를 물리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합니다. 예언과 신탁에 따라 트로이 유민과 이탈리아 원주민이 하나로 통합된 국가, 즉 로마를 이룩한 것이죠.

<아이네이스>의 가장 큰 주제는 로마에 평화의 시대, 즉 팍스로마나가 왔다는 것입니다. 칼 비테는 생애 최초로 어떤 책을 읽는냐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책에 대한 기호가 결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생후 42일부터 원문으로 인문고전을 읽어주면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런 취향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첫 책으로 <아이네이스>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아이에게 무슨 책을 읽어줄까 생각하다 아무 책이나 뽑아 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아이네이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칼 비테가 생후 42일된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아이가 바로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칼 비테는 굴하지 않고 계속 읽어줍니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칼은 세 살이 되자 <아이네이스>의 서두를 암송할수 있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네이스>를 유창하게 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애 첫 책으로 빅 픽처를 그리게 하라

아이네이아스는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에 나온 인물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비극을 노래한 책이죠.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로부터 헥토르의 장례식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원학과 복수에서 파생된 인간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 문학이 운명에 따라 체념하거나 절망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반면 <일리아스>에서는 운명에 굴하지 않는 영웅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한편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귀향길에 겪는 모험담입니다.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없는 동안 아내에게 청혼하고 자신의 재산을 축냈던 구혼자들을 죽이고 아내와 재회합니다.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아킬레우스나 복수에 성공한 오디세우스는 모두 영웅이긴 하지만 결국 개인적인 목표를 좇았습니다. 모든 이민족이 로마라는 제국에 녹아들어 팍스로마나를 이룩한다는 이념을 담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로마인들에게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네이스>에는 그리스의 개인주의 탈피하고 신탁을 통해 대제국 로마를 건설하다는 원대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로마라는 제국이 탄생하면서 유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T.S. 앨리엇은 <아이네이스>를 쓴 베르길리우스를 '유럽 문명의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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