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는 잠재력을 깨우면 아이가 천재로 자랄 거라고 믿었습니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잠재의식이 있고 여기에는 우리 재능의 80퍼센트 이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타고난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그냥 묻힌다는 것이죠.
칼 비테는 봉인되어 있는 잠재의식을 깨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 아이의 진짜 가능성을 내가 깨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라는 말처럼 아이 안에 웅크리고 있는 거인을 깨우는 것이 칼 비테 교육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의 지능이 형성되는 순간,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단하죠? 보통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젖을 먹고 트림만 해도 기특한데 그 시기부터 아이를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다니, 지금 우리가 보기에도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당시 다른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얼마나 비난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 당시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가 일고 여덟 살 때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일찍 교육하면 아이를 망친다는 것이죠.
하지만 칼 비테는 교육학자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신념에 맞게 아들을 교육했습니다. 잠재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100이라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났을 경우 태어나자마자 교육하면 100을 모두 발휘할수 있지만 다섯 살에 교육을 시작하면 아무리 훌륭하게 교육해도 제 능력의 80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선 말을 가르쳤어요. 생후 15일부터 말이죠.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아빠의 손가락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칼 비테는 "손가락, 손가락"이라고 말해줍니다. 칼 비테는 아기가 사물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 말을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후 칼 비테는 아들에게 더 많은 물건들을 보여주고 이름을 말해주었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생각하고 학습합닏. 그렇기에 언어를 제대로 배워야 자신의 능력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칼 비테는 언어 학습의 최적기를 4세 이하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최대한 많은 사물을 보여주려고 애썼습니다. 아이가 조금 자란 후에는 집 안의 물건들 꽃, 곤충 등 모든 사물이 시야에 들어 오는 족족 가르쳐주었습니다.
단순히 사물의 이름만 가르쳐주는 것을 넘어 동사와 형용사를 풍부하게 사용해 어휘의 양을 늘려주는 것은 물론 그 사물에 대한 과학적, 역사적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램프가 있다면 '램프'라는 이름을 가르쳐주고 그것이 어떤 원리로 불을 밝히는지 이야기해 주는 것이죠.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는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보통 우리는 아이가 어릴 때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거라로 생각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해버립니다. 하지만 칼 비테는 칼이 마치 어른인 것처럼생각하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이의 두뇌가 성인의 두뇌와 같다고 생각한 거죠. 매일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해주면 뇌가 일정한 자극을 받게 되어 결국에는 잠재의식 속에 그걸 인지하는 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중에 칼 비테 주니어는 자신의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의 교육법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 아직 말문도 트이지 않은 아기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황스러운 일이다. 도대체 아기가 어떻게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직접 아기를 기르면서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그 교육법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당장의 효과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네 잠재의식을 일깨우려던 것이었다. 말을 계속 가르치고 단어를 알려주고 책을 읽어주면 잠재의식이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였다가 네가 성장하면서 다시 밖으로 쏟아낸다.' 아버지의 교육법은 자신을 이겨가면서 매일 끊임없이 계속해야 비로소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잠재의식에 들려준 이야기
칼 비테는 딱딱한 이야기만 해준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흥미를 갖도록 동화적인 이야기도 곁들었습니다. "램프에는 요정이 살고 있단다." 라는 식으로요. 이 두 가지를 적적히 섞어가면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칼 비테는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아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절대 지나치지 않고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칼이 알아듣지 못한느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르는 것을 지나치기 시작하면 습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원래 단어 대신 '맘마', '치카', '지지'같은 발음하기 쉬운 아기의 말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칼 비테는 이런 말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말이라도 세 살 쯤에는 제대로 발음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맘마'라는 단어를 배웠다가 다시 '밥'이라는 단어를 배우게 하는 것은 아이에게 이중의 부담을 준다고 생각한 것이죠. 게다가 정확하게 사고하기 위해서는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어린 시절에 불완전한 말을 사용하면 대뇌가 제대로 단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칼 비테는 아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정확한 독일어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칼 비테의 집에는 오랫동안 일했던 하인이 있었는데, 칼 비테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죠. 그는 평소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사투리를 쓰곤 했습니다. 칼 비테는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아들이 언어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을 걱정하여 그에게 일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또한 칼 비테는 독일어 교육을 위해 아들에게 채을 많이 읽어줬어요. 언어 교육에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주로 성서,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과, 유렵의 역사서 등을 반복해서 읽어주었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우리나라 부모들도 열심히 잘하는 일이므로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는 않죠? 그런데 칼 비테가 아들에게 책을 읽어준 방법은 굉장히 특별합니다. 그는 독일어만이 아니라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으로도 읽어주었습니다. 성서는 히브리어로 읽어주고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읽어주는 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