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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내 아이를 위한 칼 비테 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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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 미니멀 2021. 12. 2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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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는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천재 학자 칼 비테 주니어의 아버지입니다. 조기교육과 영재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고 실천한 사람이죠. 칼 비테의 아들 칼은 미숙아로 태어났습니다. 심지어 저능아라는 판정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카 비테의 철저한 교육으로 아홉 살에 6개 국어를 하게 되었고 열 살에 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물론 열여섯 살에 법학대학 교수가 됩니다. 우리가 칼 비테에 대해 아는 것은 대략 이 정도입니다.

 제가 칼 비테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교사를 재직할 때였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왜 아이들이 배울수록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보가 되어가는지.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같은 내용을 수업이 반복해서 배웁니다. 하지만 배운 것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상담을 해보면 다들 이구동성으로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모를 아주 싫어하죠. 마찬가지로 부모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자녀 상담을 해보면 다들 약속한 듯이 아이들의 나쁜 점만 이야기합니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서로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기 위해 교육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교육자들이 생각과 교육 방법을 알고 싶었던 거죠. 그러다 칼 비테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잠재력을 믿고 온 마음을 다해 교육한 점이 대단히 감명 깊었습니다.

제가 칼 비테를 알기 오래전부터 그는 교육계의 전설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프뢰벨, 미국의 스토너 부인, 이탈리아의 마리아 몬테소리 등이 칼 비테의 여향을 받았습니다. 프뢰벨은 칼 비테의 교육법을 기반으로 유치원을 창설했습니다. 스토너 부인은 <칼비테 교육법>을 읽고 자신의 아이에게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스토너 부인의 아들 역시 다섯 살에 8개 국어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마리아 돈테 소리는 당시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지더 ㄴ어린이를 잠재력을 가진 인격체 로보고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주창했습니다.

 이렇게 <칼 비테 교육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읽히고 있었습니다. 책이 출간된 이후 100여 년간 묻혀있다가 하버드 대학교의 레오 위너 교수에게 재발견되어 전 세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고 하지요.

 일본의 경어 1980년대에 이미 <칼 비테의 교육법>을 읽는 ㄴ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중국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칼비테의 교육법>이 대중적으로 읽히기 시작했죠.

 하지만 <칼 비테 교육법>은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많이 알려진 편이 아닙니다. 유아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만 알려진 정도지요. 우리가 아는 칼 비테는 아들을 천재로 키워낸 사람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다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칼비테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칼 비테의 직업은 목사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목사가 되려면 신학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됩니다. 목사는 종교인이지 지식인은 아닙니다. 목사는 교회를 이끌고 믿음을 이끌 뿐이지 정치나 교육을 이끌지는 않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목사가 지극히 종교적인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200년 전 독일의 목사는 ㄴ어떤 존재였을까요?

 그 시절의 목사는 종교인이자 지식인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대학 교수 이상의 지식인이었죠. 좀 더 구체적으로 목사라는 직업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 책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입니다. 헤세는 칼 비테가 세상을 떠난 해로부터 약 40년 뒤인 1877년 태어났습니다. 헤세는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열네 살에 신학교에 입학했지요. 하지만 신학교의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이후 그는 문학 수업을 받고 위대한 작가가 됩니다. 헤세는 자신의 경험담을 <수레바퀴 아래서>에 담았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스 기벤 라트입니다. 

 한스는 재능이 몹시 뛰어난 아이였기에 이미 장래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교사는 물론 이웃 사람들과 학교 친구들도 한스가 틀림없이 성직가 양성학교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던 거죠. 그다음에는 신학교를 거쳐서 설교대에 서거나 강단에 진출하는 탄탄대로가 펼쳐졌습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주전체에서 40-50명의 소년들만이 이런 평탄한 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한스는 성직자 양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합니다. 한스의 일과는 치열한 사교육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아이들 못지않았습니다.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받고 교장 선생님 댁에서 그리스어 수업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에게 라틴어와 종교수업을 받고 수학 과외도 따로 받았습니다. 정말 말만 들어도 숨이 찰 지경입니다. 도대체 한스는 왜 이렇게까지 목사가 되려고 했을까요?

당시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최고의 출세 코스였습니다. 목사는 일반 서민에게 허락된 최고의 지위 기운데 하나였으니까요. 일단 신학교에 들어가면 바로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보조받게 됩니다. 그러니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얼마나 좋은 직업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눈치채셨습니까? 소설 속에서 한스에게 그리스어와 라틴어 수업을 해주는 사람이 동네 목사님과 교장 선생님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당시에는 시골 목사들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기본적으로 구사했던 것이죠. 한스가 2등으로 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히브리어까지 가르쳐주겠다고 말합니다. 시골 목사가 히브리어 실력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수레바퀴 아래서 >를  읽다 보면 당시 마을 목사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목사들과 사뭇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칼 비테 역시 상당한 지식인 계층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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